[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쓸 수 있는 만큼만 벌기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다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늪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매일 같은 생각, 똑같은 동작, 같은 모습으로 살면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생각이 고착되면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집착하게 된다. 상황이 바뀌고 다른 생각이나 행동이 요구되는데도 그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늪은 연못이나 호수와 구별이 명확하지 않지만 5m 정도의 낮은 수심에 수역에 벼과 식물, 양치식물, 갈대, 부들, 사초 등의 풀이 자란다. 투명도가 낮아 바닥이 안 보이고 모래수렁과 비슷한데 한 번 푹 빠지면 중력에 의해 점토나 모래가 몸과 압착돼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다. 높은 습도로 순식간에 빨려 들려 사람 하나쯤은 머리까지 들어가 버려 빠져 나오기 어렵다. 습지대라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특성과 늪 주변에 위치한 울창한 밀림에서 나오는 음울함 때문에 늪은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다. 늪에 자란 양치식물이나 갈대는 빠질 때는 사람의 체중으로 꺾여져서 별 저항이 없지만, 허우적거리면서 나올 때는 사람의 머리와 손에 걸려서 위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겉보기에는 물 가 풀밭에서 연속되어 있는 땅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초나 양치식물 같은 육초들이 늪 안쪽까지 자라있고 바닥이 없어 하반신이 다 빠지면 혼자 힘으로는 절대 못 나온다.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산다. 지리멸렬한 반복과 되풀이를 거듭하며 허덕이며 산다. 정체된 삶의 운전대 잡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타고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길을 간다. 일상은 엿가락처럼 굳어버린 아스팔트 위를 전속력으로 끊임없이 달린다.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고 인간은 어리석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산다. 인생의 늪에 빠져도 살 사람은 살아난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쉽다. 절망보다는 희망이 살아남기 쉽다. 삶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탓도 아니다. 아무도 타인의 인생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당면한 사람이 해결하는 방법을 안다.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작심삼일로 끝난다 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하게 나를 위해 투쟁할 사람은 바로 나다. 샌디에이고로 달리던 ‘위대한(?) 탈출’이 파토가 나고 평생 처음 마주한 악몽과 고통 속에 절벽 끝에 서 있었다. 수영을 못해서 익사할까 봐 뛰어내릴 생각을 못했다.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늪을 둘러싼 갈대를 붙잡고 속이 빈 갈대보다 더 강하고 굳게 살기로 다짐했다. 명예와 욕망, 사치와 교만의 허울을 벗으니 사는 것이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먼 고난의 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탕자의 눈물이랄까. 인생의 후반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 까탈 부리며 안달하지 않고 과속으로 달리지 않는다. ‘돈은 쓸 수 있는 만큼만 벌면 족하다’라는 생각을 왜 진작 못했을까? 화랑은 온라인 도매업으로 전환해서 시간은 내 편이다. 새벽 별 보며 산책하고. 처음 만난 바람과 악수하고, 텃밭에 채소 가꿔 나눠먹는다. 그림 그리고 글 쓸 수 있으니 보고 싶은 얼굴 그리워하며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갈대 부들 욕망 사치 온라인 도매업